체험! 발견! 마츠시마 만

마쓰시마만을 배우다

조몬시대부터 이어지는 마쓰시마만의 역사

카이즈카(패총)과 제염(製塩)유적으로 부터 보는 마쓰시마만의 역사

오쿠마쓰시마 죠몬무라 역사자료관 
관장 겸 주임 학예원 스가와라 히로키 씨

사진 중앙 : 국가 사적지 사토하마 카이즈카

마쓰시마의 성립과 조몬시대의 카이즈카

옛부터 경승지로서 알려져 미야지마(히로시마)나 아마노하시다테(교토)와 함께 일본 삼경의 하나로 꼽혀 온 “마쓰시마”. 그 아름다움은, 크고 작은 260여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다도해와, 하얀 바위표면과 녹색의 소나무숲이 푸른 바다에 빛나는 자연 경관에 있습니다. 이 일본적인 하코니와를 연상시키는 마쓰시마만의 지형이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천년 전. 조몬시대 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빙하시대 이후의 지구 온난화에 수반하는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침수되어, 그 이후 크게 변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동서 10km, 남북 8km 정도의 작은 만이지만 만 안으로 흘러드는 강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충적 ※작용이 둔하고, 해안선을 비롯한 자연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마쓰시마만 연안의 카이즈카 분포와 그 규모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마쓰시마만 연안에는 약 70개소의 카이즈카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도쿄 만과 카스미가우라 연안과 함께 조몬시대의 카이즈카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최대급의 규모를 가지는 사토하마 카이즈카(히가시 마쓰시마시)나 니시노하마카이즈카(마쓰시마초), 다이기 가코이카이즈카(시치가하마초)와 같이 장기간에 걸쳐 마을이 영위된, 규모가 큰 카이즈카도 볼 수 있습니다. 조몬시대를 통해 변하지 않았던 마쓰시마의 자연환경이 조몬인의 풍요로운 생활을 계속 지탱하면서 많은 카이즈카를 남겼던 것입니다. ※토사 등이 유수에 운반되어 하구나 강가에 퇴적되는 것.

마쓰시마만의 소금 만들기

마쓰시마만은 제염과 관련된 유적이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조몬시대 말기부터 야요이시대 중기에 걸친 시기와 나라시대 후반부터 헤이안시대 초에 걸쳐 특히 9세기 전반경에 소금 만들기가 활발했습니다.

조몬시대에는 국내 최대의 소금 생산지로서 오우산맥을 넘어 멀리 야마가타의 마을까지 운반되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저장이나 양념용 자가소비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을 연결하는 교역품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석기의 재료가 되는 돌이 없는 마쓰시마만 연안의 카이즈카에서는 야마가타의 모가미가와 유역에서 채취되는 혈암(頁岩)제 석기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소금은 농어나 도미 등 대형 물고기와 함께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교환재로서 중요한 특산품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고대의 제염은 무쓰 국부가 타가죠에 놓여진 시대의 것으로, 만 내 140개소의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조정의 에미시 정토 정책이 진행되던 때로, 무츠노쿠니에 파견된 병사와 말의 사육으로 증대된 소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소금 만들기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됩니다.

만 내에 퇴적된 토양의 꽃가루 분석 결과에서는 소금 만들기가 한창이었던 시기를 경계로 마쓰시마만 주변의 식생이 참나무 숲에서 적송나무 숲으로 크게 변화한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소금 만들기의 연료가 되는 장작의 조달로 등뒤의 나무가 베어지고 메마른 땅에 적절한 적송림이 퍼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송도의 경관을 형성하는 소나무 숲은 무쓰 국부의 소금 생산 프로젝트가 가져온 경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포인트
소금 만들기가 이루어진 유적이나 카이즈카(패총)는, 어떤 장소에 많을까요? 지도를 보면서 공통되는 것을 알아봅시다.
죠몬시대에는, '토기제염'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소금 만들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고 있었는지 알아봅시다.
오쿠마쓰시마 죠몬무라 역사자료관
관장 겸 주임 학예원
스가와라 히로키 씨
메세지
눈앞에 펼쳐진 마쓰시마만의 바다와 섬들을, 죠몬인도, 다테 마사무네공도, 마츠오 바쇼도 보고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부디 이 풍경 속에서 자란 조몬에서 이어지는 마쓰시마만의 역사와 문화를 배워 보시기 바랍니다.
관련 영상 보기
페이지 상단